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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한희원, "北은 ‘인터넷은 총’이라며 전쟁 준비중인데 우린 무방비”
사무국    (2016-09-19 17:00)   
  

한희원 한국국가정보학회장

‘국가정보학’ 전문가 한희원(58·법학과 교수) 동국대 법과대학장은 요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학문 분야인 국가정보학의 중요성을 보다 널리 알리고 주류 학문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모든 열정을 고스란히 쏟고 있기 때문이다. 꾸준한 집필 활동은 물론이고 동국대 대학원에 신설된 석·박사 과정을 통해 후배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 관계자와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 국가안보 자문, 각종 토론회 및 세미나 참석도 늘었다. 지난해 12월 18일에는 전문성을 인정받아 한국국가정보학회 6대 회장으로 취임하며 활동 보폭을 넓혔다. 무엇보다 학회 회원으로 있는 군과 검찰·경찰·국가정보원 출신 등의 정보 전문가들과 함께 다양한 학제 간 연구를 진행하며 국가안보를 지키는 데 활용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그는 평소 공식 석상에서 “국가정보학은 단지 인간의 행복을 위한 학문”이라며 “국가정보를 바탕으로 안보를 굳건히 해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수호하기 위한 학문이 바로 국가정보학”이라고 강조한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필동 동국대 법과대학장실에서 만난 그에게 오전에 발생했던 기습적인 북한 5차 핵실험에 대해 물었다. 한 학장은 “당연한 수순으로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라며 담담한 반응이었다. 오히려 정치권으로 화살을 돌렸다. 그는 “국제사회에선 북한 핵 개발을 사실상 인정하며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반면, 우리는 정치권이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한다, 못한다’를 놓고 불필요한 논쟁만 일삼았다”고 비판했다. “북한에 시간만 벌어준 꼴이 됐다”는 안타까움이다. 그는 “북한 핵무기를 직접 파괴할 경우 전면전 우려가 있는 만큼 핵무기 부품이 북한으로 유입되는 통로를 차단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더 나아가 미국의 핵우산을 확고히 제공받거나 (한국의 독자적인) 핵 개발 필요성을 진지하게 논의함으로써 북핵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학장은 국가정보학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체계적인 연구에 나선 이 분야의 대표 권위자로 꼽힌다. 검찰 출신으로 국가인권위원회 등을 거쳤다. 국가정보학은 정보의 개념과 법적 정당성, 철학적 의미를 비롯해 국가정보기관의 활동과 기능, 역사 등 국가정보 제반에 대해 학문적이고 논리적인 연구를 목표로 하는 신설 학문이다. 국가 이익과 안전을 위한 정책 수립과 최고 정책결정권자의 의사결정 과정, 국가의 대내외 정책 역사 등을 이해하는 데 있어 실용적인 학문으로 평가된다. 국내에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문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한 학장은 “이전까진 일부 정치학자들만 국가 정보기관 및 공작활동 등과 관련해 한정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이제 막 본격적인 연구를 추진하기 위한 첫걸음을 떼는 단계”라고 전했다. 한 학장은 “우리나라에선 특히 국가정보를 학문적으로 다루는 대상이 아니라 권력의 장막 뒤에서 대통령과 정보책임자 등 권력자들끼리 비밀리에 공유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5년, 한 학장은 나이 50이 다 돼 떠난 미국 유학 중에 국가정보학을 처음으로 접한 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특히 “국가정보가 단지 권력자의 ‘실력의 장’에 속하는 영역이 아니라 ‘법이 개입하는 영역’임을 목도하고 흥미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디애나주립대 대학원 법학 석사 과정 중에 저명한 학자인 스콧 베이츠 학장과 조지 에드워드 학장 밑에서 각각 국가정보법과 국제인권법을 배우며 큰 영향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연방수사국(FBI), 국립정찰국(NRO), 국립지리정보국(NGA) 등 미국 16개 정보기구들에 대한 연방대법원 판결문이 상당히 많다는 점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국가정보라고 하면 보통 선글라스와 트렌치코트를 착용한 비밀요원이 도청·협박·매수·회유로 빼내 은밀히 취급한다는 이미지가 강한 한국과 달랐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법원이 특정 정보활동에 대해 법과 위법의 경계를 명확히 규정한 사례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자료를 찾던 중 6·25전쟁과 관련한 연방대법원 판결문도 읽어볼 수 있었는데, ‘북한 김일성이 소비에트 연방의 지원을 받아 1950년 새벽에 남침했다’는 대목이 명시돼 있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국가정보를 법 규범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학문으로 체계화시킬 마음을 먹게 됐다”고 말했다. 유학생활 중 그는 영어가 현지 학생들보다 서투른 데다 20세 이상 어린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는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2번째 고시공부’를 한다는 각오로 공부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미국인 학장들에게 잘 보여 좋은 학점을 받을 요량으로 한국 갈비를 많이 대접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한 그는 “자극을 받아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공부에 매진한 결과, 대부분 과목에서 A와 B+ 학점 이상을 받을 수 있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한 학장의 얘기에 빠져들던 중 문득 정보전문가로 거듭나기 전까지 그가 살아온 길이 궁금해졌다. 1958년 강원 속초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아버지와 평범한 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북한 함경남도 정평군 출신으로 일본 유학생 출신인 아버지는 대지주 집안이라는 이유로 북한에서 부르주아로 낙인 찍혀 인민재판을 받을 위기에 처해 있던 중 1948년 극적으로 북한을 탈출한다. 수복지구인 설악동 출신 어머니는 6·25전쟁 중 오빠를 인민군 손에 잃었다. 한 학장은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공산당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사람 목숨도 가볍게 여기는 집단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랐다”고 회상했다. 자연스레 남북관계와 국가안보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서 컸다는 설명이다.

한 학장은 집안 형편이 ‘흙수저’ 출신이라고 할 정도로 어려웠다. 다행히 공부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고려대 법대에 진학한 뒤 집안 살림을 일으키기 위해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그는 “당시 몸이 아주 허약해질 정도로 공부에만 집중한 결과, 운이 좋게도 대학교 4학년 때인 23세에 고시에 합격했다”고 전했다. 유명한 사시 24기 동기로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준표 경남지사,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 등이 있다.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으로 재직하던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 법무담당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권법에 흥미를 갖던 중 평소 가깝게 지냈던 검찰 선배인 고 김창국 초대 인권위원장이 “함께 일해 보자”며 이직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다음 해 인권침해조사국장으로 옮긴 후 군이나 장애인 복지시설 등에서 자행되던 각종 인권유린 사태를 조사해 개선 기회를 만드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다 돌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2005년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직속상관인 사무총장으로 온 뒤 업무 스타일이 좀 맞지 않아 휴직계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그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좋은 스승과 풍요로운 연구환경에서 국가정보학에 천착하며 전문성을 쌓을 수 있었다. 2007년에는 동국대 제의를 받아 정학장으로 발령받았다.

한 학장은 학자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으로 끊임없는 학구열과 비판적 태도를 꼽는다. 그는 시간이 허락하면 하루 10시간 이상 미국 중앙정보국(CIA) 문서 등 정보 관련 자료를 읽고 해석하는 것을 즐긴다. 오전 2∼3시에 일어나 꾸준히 책을 쓰는 습관도 유지하고 있다. 국가정보학원론 등 2008년부터 현재까지 그가 쓴 책만 17권에 이른다. 지난해엔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최고 안보전문가 과정을 수료하며 부족한 학문적 갈증을 채웠다. 공개 세미나와 칼럼 등을 통해선 “국정원장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전문성을 바탕으로 선임돼야 하고, 국정원 직원들 역시 능력을 더 갖춰야 한다”고 쓴소리를 하고 있다. 그는 “아내가 그만 좀 하라고 말릴 정도”라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의 진정성이 통했는지 국정원은 물론이고 정부와 정치권에서 국가안보 관련 자문 요청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에게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안보 선진국과 비교해 한국의 국가안보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묻자 꽤 심각한 답변이 되돌아왔다.

“솔직히 저는 대한민국이 운으로 돌아가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테러방지법이 최근에야 통과될 정도로 국가안보 관련 법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국가안보사범을 간첩죄로 처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 안보 선진국들은 국가기밀을 누설해 나라를 위태롭게 만든 안보사범들을 간첩죄로 엄히 다스려 징역 15∼20년의 중형을 부과하지요. 또 북한은 ‘인터넷은 총이다’를 기치로 삼고 사이버테러를 넘어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에 대한 대비도 무방비 상태입니다. 사이버테러방지법 제정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일각에선 국정원의 지나친 권한 강화와 감청 등 인권침해를 우려하는데, 정보기관에 ‘권한’이 아니라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시각을 교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 사생활을 들여다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보 위협세력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법 제정을 논의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일각의 반발을 의식한 때문인지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미국처럼 분기별로 관련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해 정보기관의 실적을 유도하고 경각심을 갖도록 견제하는 한편, 사이버테러방지법 등 인권침해 우려가 있는 법안은 영구법이 아닌 한시법으로 제정해 실적을 보고 폐지를 논의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대통령이나 장관, 국회의원들이 경제나 안보 관련 정보 외에 불필요한 공작 혹은 정치정보에 관심을 두지 않아야 국정원이 불필요한 정보를 생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대통령은 왜곡 가능성이 있는 서면 보고를 받기보다는 정보 책임자와의 독대를 통해 국내외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직접 업무 지시에 나서야 한다”며 “국가정보를 제대로 알고 안보를 굳건히 하는 데 주력해야 국민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준영 기자 cjy 324@munhwa. com


출처: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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